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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넣어둔 식빵이 더 빨리 딱딱해지는 이유, 전분 속에서 벌어지는 일

읽는 시간 약 9분

얼마 전 냉장고에서 식빵을 꺼냈는데,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웠던 빵이 유난히 퍽퍽하고 딱딱해져 있었습니다.

상하지 않게 하려고 냉장고에 넣어둔 건데, 막상 먹어보니 갓 사 온 빵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식감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저는 예전부터 빵이 딱딱해지는 이유를 단순히 “수분이 날아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찾아보니 이야기가 꽤 달랐습니다.

빵이 굳는 과정에는 수분뿐만 아니라 전분 분자의 구조 변화와 수분의 이동이 깊게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냉장고의 차가운 온도가 빵의 노화를 빠르게 만드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빵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빵이 갓 구워졌을 때부터 전분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됩니다

식빵을 이해하려면 먼저 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분(starch)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밀가루 속 전분은 크게 아밀로스(amylose)아밀로펙틴(amylopectin)이라는 두 종류의 다당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평소에는 이 전분 입자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빵을 굽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반죽 속에 들어 있는 물과 열이 전분 입자에 영향을 주면서 전분이 물을 흡수하고 팽윤하기 시작합니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전분의 결정성이 무너지고 구조가 변화하는데, 이 과정을 전분의 호화(gelatinization)라고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밀가루 속 전분이 물과 열을 만나 빵 특유의 부드러운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갓 구운 식빵을 손으로 눌러보면 말랑하고 촉촉합니다.

저는 여기까지는 그저 “빵이 잘 구워졌으니까 부드러운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전분의 분자 구조가 열과 물에 의해 상당히 크게 변한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빵이 식은 다음부터입니다.

빵이 식으면서 전분 분자들은 다시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아밀로스는 비교적 빠르게 서로 결합해 구조를 만들고, 아밀로펙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재배열됩니다.

이 과정에서 전분 내부의 수소결합이 다시 형성되면서 보다 질서 있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바로 이 현상이 전분의 노화(retrogradation)입니다.

즉 우리가 “빵이 굳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단순히 빵 표면의 수분이 증발한 것만이 아니라,

빵 속 전분 분자 자체가 다시 정렬되는 과정이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알고 나면 냉장고에서 딱딱해진 식빵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왜 하필 냉장고 온도에서 빵이 더 빨리 굳을까요?

여기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음식이 상하는 걸 막으려면 차갑게 하면 된다.”

이건 상당히 맞는 이야기입니다.

냉장 온도에서는 대부분의 미생물 증식 속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식품의 부패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빵의 식감 변화는 미생물과 별개의 문제입니다.

빵이 굳는 전분 노화는 특정 온도 범위에서 오히려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일반적인 냉장 온도인 0~10℃ 부근은 전분의 재결정화와 관련된 변화가 활발하게 나타날 수 있는 구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냉동 상태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온도가 충분히 낮아지면 빵 속 수분이 얼면서 분자의 이동성이 크게 제한됩니다.

결과적으로 전분 분자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재배열되는 속도도 크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장기간 빵을 보관해야 한다면 냉장보다 냉동이 더 적합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저는 조금 재미있는 모순을 느꼈습니다.

냉장고는 빵을 상하는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하지만, 빵의 ‘맛있는 식감’까지 보호해주는 것은 아니었던 겁니다.

말하자면 냉장고가 빵에게는 일종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 빵이 딱딱해지는 건 전분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빵의 노화를 전분 하나로만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빵 속에는 물, 단백질, 지방, 당류 등 다양한 성분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이 수분 이동(moisture migration)입니다.

빵을 구운 직후에는 빵 내부에 수분이 비교적 균일하게 분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분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빵의 부드러운 속 부분인 크럼(crumb)과 바삭한 껍질인 크러스트(crust) 사이에서도 수분 이동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갓 구운 빵은 내부의 수분 함량이 높고 껍질은 상대적으로 건조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내부의 수분이 껍질 쪽으로 이동하면서 처음에는 바삭했던 껍질이 눅눅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부는 수분의 상태와 전분 구조가 변하면서 점점 퍽퍽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빵의 노화는 단순히

“수분이 빠졌다 → 딱딱해졌다”

라는 한 줄짜리 과정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전분의 재배열 + 수분 이동 + 빵의 미세구조 변화

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우리가 느끼는 식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유리전이(glass transition)입니다.

식품 속 수분 함량과 온도에 따라 식품의 물성이 유리상(glassy state)과 고무상(rubbery state) 사이에서 달라질 수 있는데, 이러한 물성 변화 역시 빵의 저장성과 식감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식빵을 먹으면서 유리전이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식품공학에서는 이런 분자 수준의 물성 변화까지 고려해 식품의 저장 안정성과 식감을 연구합니다.

평소에는 그냥 “식빵이 오래돼서 딱딱해졌다”고 생각했던 현상이 사실은 꽤 복잡한 물리·화학적 변화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알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빵을 가장 맛있게 오래 보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인 식빵을 며칠 안에 먹을 예정이라면 밀폐 용기에 넣거나 밀봉해 실온에서 보관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보관해야 한다면 냉장보다는 냉동 보관이 유리합니다.

이때 한꺼번에 얼리는 것보다 먹을 양만큼 나누어 밀폐하는 것이 좋습니다.

공기와의 접촉을 줄이면 냉동 중 수분 손실이나 냉동 화상 같은 품질 저하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먹을 때는 자연해동하거나 토스터, 오븐 등을 이용해 다시 데우면 식감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다만 크림이나 생크림, 커스터드 등 냉장 보관이 필요한 재료가 들어간 빵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런 경우에는 빵의 식감보다 식품 안전이 우선이므로 제품에 표시된 보관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저라면 이제 식빵을 사 와서 무조건 냉장고부터 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이 빵을 언제 먹을 거지?”

오늘이나 내일 먹을 거라면 식감을 생각하고, 오래 보관할 거라면 냉동을 선택하는 식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차갑게 보관하느냐’가 아니라 식품의 특성과 보관 목적에 맞는 온도를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이번 내용을 찾아보면서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생각보다 훨씬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빵 한 조각 안에서도 전분 분자가 재배열되고 수분이 이동하며 미세한 구조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딱딱해졌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 수준의 변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음에 냉장고에서 딱딱해진 식빵을 발견한다면 단순히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상해서 딱딱해진 게 아니라, 전분 분자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식빵은 냉장 보관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냉동 보관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예전이라면 무조건 냉장고였겠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적어도 일반 식빵이라면 ‘냉장고 = 무조건 신선함’이라는 공식부터 다시 생각해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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